유출 동영상에 철학을 담는다고? 이런 영화도 있어?
이런 영화도 있나 싶다. 도발적이고 냉소적인 제목답게 영화의 전형과 형식을 모두 깨부순다. 섹스로 시작, 섹스로 끝나는 듯한 영화, 그러나 역사와 철학, 비판과 풍자, 드라마와 코미디, 그리고 상상력 등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지독히도 솔직하고 기상천외한, 그래서 웃음이 그치지 않는 영화. 그러나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우리는 인터넷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클릭 한번 잘못하면 나의 은밀하고 사적인 부분이 한순간에 털릴 수 있는 위험성이 온라인 공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성적 무용담이 디지털 시대와 만나 인간의 노출 충동을 자극한다. 그 예기치 않은 결과들은 종종 ‘섹스비디오 유출’이라는 형태의 희비극으로 대중에 전달된다. 영화는 이처럼 아이러니가 극대화된 설정에서 시작된다. 역사 선생인 여주인공의 섹스비디오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성과 환상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집중하면서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또한 많은 것을 질문한다. ‘배드 럭 뱅잉 오어 루니 폰(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은 지난 3월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 수상작으로 2015년 도망간 집시를 추적하는 경찰관 부자의 이야기를 다룬 ‘아페림!(Afelim!)'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출신 라드 주드 감독의 최근작이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 에미(Katia Pascariu)는 남편과 함께 촬영한 자신의 섹스 비디오가 포르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비디오는 학생들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순식간에 동료 교사들과 학부형들까지 비디오를 보게 되고, 학교와 학부형들은 긴급회의를 소집, 에미를 심판대에 세운다. 부쿠레슈티 시내를 배회하는 에미를 미행하는 카메라의 앵글은 마치 CCTV 화면을 연상시킨다. 그녀의 사생활이 온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팬데믹 시대에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다. 에미는 그녀를 바라보는 시민들과 좌충우돌한다. 자신에게 쏠아지는 온갖 비난을 버텨내며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투쟁을 이어나간다. 주드 감독은 에미의 섹스비디오 사건을 통해 다음과 같은 3개의 각기 다른 결말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결론부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결론에 동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가정1: 에미는 학부형회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다. 이에 반대하는 학부형과 에미가 심하게 충돌하여 몸싸움을 벌인다. 가정2: 에미에게 유죄를 내린 학교 측은 에미의 파면을 선고한다. 에미는 아무런 이견도 제시하지 않고 조용히 교정을 걸어나간다. 가정3: 유죄 선고에 분노한 에미는 ‘원더우먼’이 되어 남성 성기 모양을 한 스틱으로 자기에게 비난을 가했던 교사들과 학부모들을 마구 난타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당연히 3번째의 가정이다. 감독은 당사자인 에미보다 에미의 성애를 관음한 세상을 향해 질책의 메시지를 던진다. 학부형회의 토론은 삼류 코미디를 보는 듯 유머와 냉소가 가득하다. 그리고 에미의 분노와 저항을 쓴웃음으로 지켜봐야 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몇 가지의 문제의식들을 짚어 보자. 포르노그래피는 합의된 성관계인가, 비디오 유출사건은 누구의 책임인가, 학생들의 롤모델이 되어야 하는 선생의 위치에서 노출된 에미의 섹스비디오 유출 사건에 대하여 대중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일반 대중은 “잘못인지 몰랐다, 다들 하니까 나도 따라 했다”라는 반응에 익숙해 있다. “둘이 즐긴 거고, 합의하고 찍은 거다. 나는 그걸 그냥 본 건데 그게 왜 죄인가”라며 섹스비디오를 만든 사람과 그것을 본 자신들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식이다. 일부는 한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영상을 공유한다. 이들은 영상을 저장해 놓고 비밀스러운 것의 일원이 됐다는 일종의 동질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물론 영상 공유는 잘못인 거 같다는 생각에서 영상을 접하고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만 매몰되어 정작 영상을 본 우리들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포르노에 대한 뭐라 표현하기 힘든 우리 마음속의 불편함을, 이제는 솔직하게 꺼내어 얘기해야 할 때라고 영화는 제안한다. 문제의 관건은 비디오 촬영을 누가 했는지, 그리고 누가 올렸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정작 논의되어야 할 것은, 누가 보았느냐에 대한 윤리적 성찰과 반성이다. 영화는 군중심리와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극을 힐난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그 부조리극의 위선자적 위치에 있었음을 자각시키고자 한다. 영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성욕의 대상으로 보고 말초적 욕구 충족의 도구로만 삼는 저열한 행위이다.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행위를 불편해하지조차 않는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대개의 섹스 비디오는 남성으로서 성적 능력의 유능함과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고 싶은 유아적 심리에서 출반한다. 특히 포르노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학습한 남성들의 심리에는 자신의 성애를 영상화하고 싶은 충동이 늘 내재해 있다. 그들의 유아적 측면을 범죄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과시하고 싶은 강한 충동의 이면에는 깊은 열등감과 공허함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젠더 감수성은 모른 체하며 성 문제의 헤게모니만을 고집해온 이 시대의 남성들이여. 지금은 페미니즘의 물결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때가 아니라 성질서의 반절인 여성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거듭나야 할 때이다. 김정 영화평론가동영상 유출 유출 동영상